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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멕시코로 떠나는 등반 여행
Part I 반짝반짝 별처럼, 꿈을 꾸기 시작했다. - #1 멕시코로 떠나는 등반 여행
전미현   |   Aug 20, 2020

#1 멕시코로 떠나는 등반 여행

지난해 내내 등반에 목말라 있었다, 나를 쏟아 부을 수 있는 등반에 말이다. 내 온 집중력과 정신력을 아낌 없이 바닥 내줄 등반에 대한 갈구였다. 돌아오는 겨울에는 해외로 등반을 꼭 나가고 말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겨울이면 의례껏 따뜻한 동남아 나라들 중 어딘가로 등반을 가곤 하는 식상한 생각에서 벗어나자는 게 이번 등반지 선정의 우선적인 목표였다.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이리저리 드래그를 하며 겨울에 따듯할 만한 나라들을 훑어본 후, 선별된 나라들의 등반지 정보를 mountainproject.com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몇 군데로 압축된 후보지들 중에서 가장 끌리는 건 바로 멕시코였고, 지금까지 여행으로도 접해보지 않았던 다른 문화의 장소여서 호기심을 더 자극했다. 

멕시코의 등반지들 중 북부의 산업도시 몬테레이(Monterrey) 인근에 꽤 유명하고도 큰 등반지 엘 뽀뜨레로 치꼬(El Potrero Chico, 줄여서 EPC라 부른다)가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겨울에 꼭 오라고 나를 유혹이라도 하듯이 등반의 가장 최적 시기는 12월에서 2월까지였고 기온은 섭씨 10도에서 25도 정도로 등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더구나 스포츠 클라이밍* 과 멀티 피치 등반* 이 혼합된 곳이었는데 내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다. 


* 스포츠 클라이밍 (Sport Climbing) : 바위에 설치해 놓은 앵커와 볼트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암벽등반의 한 형태이며, 클라이머가 등반을 하면서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그 퀵드로에 로프를 걸 수 있도록 하여 일정 거리 이상의 추락을 막아줄 수 있다. 이는 볼트나 고정 앵커가 없이 등반자가 직접 등반을 하며 보호장치(캠)를 설치하며 오르는 트래드 등반(Traditional Climbing)과 대조적인 형태이다. 
* 멀티 피치 등반 (Multi Pitch Climbing) : 로프 하나로 등반할 수 있는 거리를 피치(pitch)라고 부르며 그 피치를 하나 이상 가야하는 등반을 일컫는다. 

 



 

매력적인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도 멕시코 시티(Ciudad de Mexico)와 서울을 오가는 직항 노선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 멕시코 시티를 거쳐 몬테레이까지 가는 국내선을 포함해 비행시간이 무려 최소 17시간에 육박하지만 환승 횟수가 적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게다가 몬테레이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등반지가 있는 마을까지 가는 시간은 자동차로 1시간이면 족하다. 어느 등반지를 가든지 공항에서 최종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이 길고 복잡할수록 우리가 느끼는 피로도가 굉장히 높아진다는 점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한달 이상을 머물게 될 테니 실질적으로 궁금한 건 물가인데, 속 시원하게 결론부터 얘기하면, "굉장히 싸다!". 사실 클라이머인 우리가 첩첩 산중 외딴 마을의 등반지에서 먹고 자는 일 이외에 돈을 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 일행들은 맥주와 데킬라를 마시는 데 가장 많은 돈을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쯤 되면, 아니, 멕시코라는 나라를 입에 올렸던 순간부터 모두가 하나같이 묻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내가 주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들 중 하나다. 

"멕시코 위험하지 않나?!" 

뉴스 속에서 본 멕시코는 마약 밀매와 총기 사고가 난무하는 무법 천국 같다고들 했다. 나도 가본 적이 없고 잘 모르는 멕시코라는 나라를 놓고 멕시코의 위험성 여부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렇다면, 이 지구상에 위험하지 않은 곳이 있나?”

대한민국 밖에서 우리를 본다면, 우리나라는 북핵과 남북 분단으로 언제 폭파될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곳인 동시에 국민 모두가 사이코 패스 살인자인 나라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지레 짐작해 만들어놓은 부정적인 틀로 인해 우리의 사고와 경험의 폭 그리고 미래 발전적 가치를 좁아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내가 이런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논리이자 원동력인 것 같다. 

어쨌거나 떠나기만 하면 될 일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등반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서 함께 갈 사람을 구해야 한다. 그런데 등반 취향과 사고방식 그리고 여행 시기도 맞춰야 하니 동행할 사람들을 꾸리는 일이 가장 문제이고, 나는 한참을 같이 갈 사람을 한참이나 수소문하다가 12월 즈음에는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1월 중순 경 한 모임에서 (김)빛을 오랜만에 만나면서 한달 이상의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멕시코 등반여행 가자!"

놀랍게도 빛은 시원스럽게 좋다고 대답했고 여기에 (배)진학 오빠와 (고)경완 선배님이 합류하게 되었다. 모두가 처음 만나 일정을 조율하고 출국에 이르기까지 단 2주가 걸렸을 뿐이다. 의지가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일사천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멕시코에는 봄꽃이 만발하기 시작하던 2월 첫째 주 어느 날, 나를 포함한 4명의 맴버들은 누에보 레온(Nuevo Leon)주 EPC 주립공원 내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공원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달고(Hidalgo)라는 마을에도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집이 몇몇 있기도 하지만, 등반지까지의 거리가 있어서 자동차 렌트를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클라이머들은 공원 입구에 있는 숙소를 택하곤 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고, 클라이머들을 환영한다는 네댓 개의 숙소들 중에서 가성비가 제일 좋은 낀따 라 빠고다(Quinta la Pagoda)에 둥지를 틀었다. 시설이 깨끗하고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무엇이든 적응하기 나름이라는 듯 일정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정이 들어 세상 아늑한 곳이 따로 없었다. 

 


 

등반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등반지 가장 가까운 곳(걸어서 5분)에 숙소를 잡아놓고 보니 먹고 사는 일, 즉 장을 보러 가는 일이 문제였다. 30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가까운 마을의 마트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늘 방법이 있기 마련, 차 없이 다니는 외지의 클라이머라는 걸 잘 아는 동네 주민들은 흔쾌히 차를 태워주곤 했다. 본인들이 가는 방향과 다르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는 센스는 덤이었다. 

 


 

해외 등반지 어디를 가도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우리나라와의 물가를 비교해보면 정말 사랑스럽다. 장을 볼 때마다 4명이 5일 정도 먹을 양의 것들을 사곤 했는데, 고기와 야채, 과일, 기타 식자재 그리고 술을 샀는데 700페소 (한화로 5만 원 선)이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절대로 가격을 꼼꼼히 확인해 아껴가며 장을 본 것도 아니다. 솥뚜껑 만한 크기의 티본 스테이크 한 덩이 가격을 대충 계산해 보아도 단돈 3천원 정도일 뿐이었다. 우리는 아마도 평생 먹을 소고기를 멕시코에서 다 먹었을 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우리네 물가보다 훨씬 비싼 것들 (고기, 야채, 아보카도와 같은 열대과일 등) 은 이럴 때 많이 먹고 가야 한다며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매 끼니를 해먹기도 하지만, 등반을 마치고 지쳐 있을 때는 숙소 근처에 몇 군데 있는 주점을 겸한 식당을 이용하기도 한다. 공원 초입에 노천 식당으로 운영되는 두 곳에서 맥주와 마르가리따(고춧가루를 뿌린 데킬라 칵테일) 그리고 타코와 브리또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등반지에서 나오자마자 위치한 곳이다 보니 등반을 막 마치고 배고플 클라이머들의 발길을 가장 잘 붙잡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등반지에서 살아나가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모두 준비되었으니, 등반만 가면 된다. 이 새로운 등반지는 어떨지 정말 궁금해 죽겠다. 어서 등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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