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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음부터 차근하게 준비를, Super Nova(5.11a/8P)
Part I 반짝반짝 별처럼, 꿈을 꾸기 시작했다. - #2 처음부터 차근하게 준비를, Super Nova(5.11a/8P)
전미현   |   Aug 20, 2020

2020년 2월 11일 화요일

멕시코에 온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고, 아침 8시에 열리는 마을의 화요 장터에 나가기로 했다. 장에 나가면 이것저것 세상 구경, 사람 구경에 우리가 먹을 것들도 사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등반을 못하고 하루를 공칠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움직여 장을 보고 들어와 등반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이제 막 밝아진 하늘에는 습한 구름이 끼어 있었고 하루 종일 흐릴 듯이 회색 빛 아침을 걸어서 개장 준비가 한창인 장터 입구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나온 것 같아 근처의 노점상에서 아침 대용으로 하나에 15페소(한화로 1천 원) 짜리 타코를 사먹었다. 

온갖 먹거리들이 즐비한 장터의 유혹을 어렵사리 뿌리치고 서둘러 필요한 것들을 샀는데, 오전 나절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등반 첫날에 발목을 다친 경완 선배님을 제외하고 우리 셋이 오후를 보낼 수 있는 루트를 고르다가, V자 모양의 Las Estrellas 섹터 깊숙한 골짜기에서 등반하던 클라이머들이 떠올랐다. 루트의 난이도는 실력이 제 각각인 우리가 함께 갈 만큼 쉬운 곳이었고 모두 8피치라서 오후 반나절 동안 다녀오기 딱 맞을 것 같았다.

 



 

Super Nova (5.11a /8피치)는 멀리서 보아도 등반 선이 명확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 어두 컴컴한 골짜기에는 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고 바위의 색마저 시커메서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등반 가이드북에서 인기도가 별 3개짜리였는데 지나갈 때마다 보면 꼭 2팀 정도는 붙어 있는 루트였다. 우리가 조금 늦게 등반을 시작했으니 오전에 바위에 붙은 사람들이 저 멀리 위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었다. 예상대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다행히 없었고 한 팀이 높이 올라가 보이지 않는 듯 배낭과 개 한 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모든 루트에는 각기 그 루트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대개는 루트를 개척한 사람 또는 처음으로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 루트에 이름을 부여하곤 한다. 
* Yosemite Decimal System (YDS)은 주로 미국과 캐나다의 산악인들이 사용하는 걷기, 하이킹 및 등반의 난이도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현재 존재하는 난이도는 5.0부터 5.15까지이며, 5.9 이상의 난이도는 다시 알파벳 a, b, c, d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피치가 최고 난이도였고 두 번째 피치까지 내가 선등 을 서고 나머지 6피치를 진학 오빠와 빛이 나누어 3피치씩 선등을 서기로 했다. 

내가 온사이트 로 1피치(5.11a)를 오르면서 등반이 시작되었다. 어두컴컴한 색의 바위가 주는 위압감인가, 아니면 유난히도 쪼개진 듯 각이 지고 반질반질한 바위라 그런 것인가, 난이도에 비해 은근한 공포심을 느끼며 등반을 했다. 세로로 쪼개진 바위 면을 이용해 몸을 좌우로 이동시키는 동작이 나오는데, 추락이라도 하면 각진 바위 모서리에 찍힐 듯이 무서웠다. 연이어 내가 선등을 선 2피치(5.8)는 바위의 경사도가 90도 이하로 살짝 누웠는데 마치 두 손과 두 발로 계단을 오르듯 반복되는 쉬운 동작이었다. 

 



 

3피치(5.6), 4피치(5.6) 그리고 5피치(5.9)는 진학 오빠가 선등을 설 차례였다. 여전히 바위는 누워있고 홀드는 전 피치처럼 계단과 같았다. 이때부터 우리는 전체적인 이 루트에 대해 감을 잡고 이 지루한 동작들에 대한 인내를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이드북에는 마지막 피치에서의 경치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그 말 하나만 믿고 우리는 반복되는 동작들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왜냐면 이미 우리 뒤로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경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 선등(Lead Climbing) : 로프를 퀵드로와 앵커에 먼저 걸며 오르는 등반 형태이며 등반자가 그 뒤를 따를 때 후등(Top-ropping)이라 부른다. 
* 온사이트(Onsight) : 루트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미리 루트에 손을 대지 않고 눈으로만 살펴본 상태에서 단 한 번의 시도로 확보물을 설치하며 추락 없이 선등하여 완등에 이르는 것. 

 


 

경치 외에도 우리는 다른 것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셋이 멀티 피치 등반을 함께 하고 있는 우리가 손발이 척척, 호흡이 척척, 말하지 않아도 뭘 하려는지 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등반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런 쉬운 루트에서 온전히 등반 시스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꽤 필요한 일이었다. 

6피치(5.6)부터는 빛이 선등을 섰고, 여전히 아래 피치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동작들이 이어졌다. 이쯤 되니 '그 놈의 정상 경치가 어떻길래... 어디 한 번 가보자' 하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서 하강하는 앞선 팀을 만났는데, 정상 경치가 정말 멋지냐고 확인 차 묻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져!"

남은 7피치(5.9)와 8피치(5.8)를 빛이 선등으로 마저 오르고 두번째로 올라간 진학 오빠에게 소리쳐 물었다. 

"경치 진짜로 멋져?"
"대박이야! 빨리 올라와!"

정상까지 가는 길은 낙석이 많았다. 그리고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을 정도의 너른 땅을 밟고 앞에 우뚝 서 있는 Western EPC와 마주했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바위산이 이만큼이나 가까이에 솟아 있을 수 있지?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 아닌 듯 경이롭기만 했다. 

 



 

다녀간 많은 이들의 흔적이 낡은 노트북 하나에 빼곡히 적혀 있었고, 우리의 이름도 방명록에 남겨놓고는 서둘러 하강을 시작했다. 우리는 등반은 물론 하강에서도 아직은 손발이 잘 맞지 않은 상태여서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피치를 따라 그대로 해야 하는 하강을 6번 정도 했고, 드디어 2피치 종료지점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그런데 3피치 하강 링에 걸려 있던 로프를 아래로 당겨서 회수하다가 그만 로프가 바위에 끼어 버렸던 것이다. 여러 번 로프를 이리저리 튕겨보고 당겨보고 밑에서 위로 물결도 쳐보았지만 로프는 요지부동이었다. 일몰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 흐린 날씨의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헤드랜턴도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걱정으로 애가 닳기 시작했고 로프를 열심히 당겨보던 진학 오빠가 외쳤다.

“아! 됐다!" 

우리는 다행히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무사히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바위에서 걸어 나와 아스팔트를 걸으며 숙소로 향하던 중에, 내가 빛에게 등반에 대한 제안을 했던 시점이 말이다.

 "언니랑 같이 Estrellita(Las Estrellas 섹터의 가장 인기 있는 총 12피치 루트) 가지 않을래?"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등반 루트만 생각하며 입에 올린 제안은 아니었다. 빛에게는 등반에 필요한 근성이란 것이 있었고, 등반에 대한 의욕과 의지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높았다. 그런 둘의 열정과 근성이 모이면 어떤 등반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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