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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길
[에세이] 함께하는 길
이수항   |   Oct 26, 2021

저는 평소에 자연의 풍경을 담은 미술품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밍은 제가 하고 있는 작업과 닮은 점이 있는데요. 시작, 중간, 마무리까지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죠. 이 과정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좋아서 하는 클라이밍이고 즐겁기 위해서 하는 클라이밍이지만 유독 클라이밍이 더욱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온전히 등반에 집중했을 때, 두 번째는 함께한 동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을 때, 세 번째는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낄 때입니다. 오늘 여기서는 두 번째 즐거움으로 언급한 '함께한 동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을 때'를 주제로 삼을까 합니다.

 


 

지난 3월, 김우경, 김진석, 우석주, 오영훈, 그리고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이서 북한산 연장 등반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이 연장 등반에서의 추억이 가장 인상 깊고 즐거웠으니 이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네요.

 


 

만경대 병풍암~노적봉~백운대~숨은벽~인수봉의 순서로 다섯 개의 봉우리를 등반하는 계획을 세우고, 우리는 우이동의 알피니스트 잡지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라면을 후루룩 끓여 먹었죠. 오전 6시 45분에 도선사에서 출발한 우리는 두 명, 세 명씩 짝을 지어 두 개의 팀으로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였던 병풍암은 등반의 흔적이 많이 없어 풀과 흙이 크랙에 가득했으나 피치가 짧아 등반을 빠르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두 번째 봉우리, 노적봉을 향했고 연장 등반에서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지라 빠른 등반을 위해 동시 등반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동시 등반은 처음이라서 쉬운 루트인데도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긴장한 탓에 속도를 낼 수 없었고 거북이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정상에 올라가니 이미 도착한 토끼들, 아니 형들이 저를 기다려주고 있었습니다. 팀에 폐가 되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형들은 아무렇지 않게 천천히 가자고 말해주었습니다.

 


 

노적봉 다음인 백운대 신동엽길 또한 동시 등반으로 올랐고, 어려운 구간에서는 확보를 보며 올라갔습니다. 백운대 정상에 오르니 오후 2시가 되어 간단히 간식을 먹고 숨은벽으로 넘어갔는데 형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거침없이 등반을 이어나가더라고요. 그로 인해 생각보다 빠르게 숨은벽 등반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연장 등반의 마지막 봉우리가 되는 인수봉 비둘기길 앞에 서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는지 피로가 몰려오더군요. 석주형이 고독길 *클라이밍 다운으로 등반을 마치자고 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진심이었어요.

* 클라이밍 다운 : 비교적 짧고 완만한 경사의 암벽에서 로프나 용구를 쓰지 않고 맨몸으로 내려오는 기술.

 


 

클라이밍 다운으로 인수봉을 내려오는 것이 처음이었던 저는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해보니 역동작으로 내려오는 것이 재미있었고 내 손과 발로 바위를 기어 내려와보니 마무리로 클라이밍 다운을 제안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클라이밍 다운을 제안해준 석주형한테 고마웠어요. 오후 7시, 하산을 위해 헤드랜턴을 꺼낸 모두의 얼굴엔 싱글벙글 보름달이 떴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회수하던 석주형은 산 노래를 인수봉이 떠나가라 부르며 흥을 내었고 저도 그 흥에 올라타보았습니다.

 


 

형들 덕분에, 함께해서 즐거운 등반이었고 맥주를 마시며 떠들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습니다. 앞에서 클라이밍과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의 닮은 점을 말씀드렸죠? 다른 점이라하면,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되겠네요. 해보지 않았던 벽 앞에서의 두려움, 뒤처지는 동료에게 내밀어 주는 따뜻한 손길, 완등 후 배로 곱해지는 성취감. 이런 점들이 아주 큰 매력인지라 저는 지금까지 그러하였듯 앞으로도 등반을 즐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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