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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길
[에세이] 나를 찾아가는 길
전미현   |   Oct 26, 2021

저는 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전국의 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유년기를 보냈어요. 산을 향한 열정이 남다르셨던 아버지는 주말마다 식구들을 이끌고 새로운 산과 코스를 찾아다니셨죠. 제가 그런 아버지를 많이도 닮은 걸까요. 지금의 저도 클라이밍을 15년 이상 제 생활 속에 녹여서 지극히 당연한 삶의 일부로 유지하며 매 주말에 클라이밍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스며 있던 산에 대한 친숙함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산속의 바위에 대한 호기심으로 향했던 모양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클라이밍’이란 단어가 저를 이 클라이밍의 세계로 이끌었고, 처음에는 아마도 단순 성취감에 취해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은 이 무섭고 힘든 걸 왜 하는 것이냐, 그렇게 재미있냐, 또는 성취감이 대단하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그런데 말이죠, 클라이밍을 오랜 시간 동안 해오다 보니까 처음에 느낀 흥미나 재미, 성취에 대한 짜릿함 등의 매력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게 되었답니다.

 


 

클라이밍 자체를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이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클라이밍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고 배워 나가면서 그 안의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도 살펴볼 수 있었고요. 그런 진지함과 소소한 깨달음이 삶을 양념처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줬던 것 같아요. 이런 매력에 흠뻑 빠져 클라이밍을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된 거죠. 클라이밍이 제게는 일종의 삶의 방식이자 치유 방식이에요.

 

클라이밍의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해 나가는 데에는 단순히 결과물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의 가시적인 결과를 위해서 수반되어야 할 계획들, 변수에 대한 빠른 판단, 그리고 수많은 마음의 변화를 직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중요했죠. 그뿐만 아니라, 클라이밍 이외의 삶 속에서의 저 자신의 심신과 조율해 나가는 것이 절대적인 부분이었어요.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러 등반 여행들과 거쳐왔던 많은 프로젝트 등반이 이런 나름의 개인적 철학이 배어 나온 소중한 산물들이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 가장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할 만한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 등반이 ‘설악산 적벽 에코독주길(5.13-/3P) 자유등반’이었는데, 무언가로부터 얻은 깊은 상처에서 나를 치유하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게 만들어 주었던 저만의 아이코닉한 과정이었어요. (곧, The Cleanest Line 에서 그 오랜 과정의 깊은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클라이밍이 저 자신의 힘들고 아픈 점만을 다독거려주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아요. 등반의 다양한 장르 중에서 *스포츠클라이머로 클라이밍을 시작했던 제게는 *트래드 클라이밍이 익숙하지 않았고, 전혀 새로운 등반을 시작한 것처럼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적이 있었죠. 스포츠클라이밍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재밍이라는 테크닉이 생소해서 좀처럼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등반을 처음 시작했던 시절에 기초적인 동작도 마음대로 되지 않던 초보자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 Sport Climber : 바위에 고정된 확보물(볼트)를 이용하여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과 기술로 바위를 오르는 등반 형태를 행하는 등반

* Trad Climbing : 캠 또는 너트 등의 비고정 확보물만을 이용해 오르고 해당 확보물을 회수하며 등반하는 형태

 


 

그런데 혹자는 이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이 등반을 멀리하기도 하는데, 저는 분명히 매력이 있는 이 등반 형태를 멀리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누구에게든 올챙이 시절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말이죠. 아는 것이 없다는 건 모든 것이 새롭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기회가 더 크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이렇게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또 다른 방향성을 얻고 그 과정에서 또 새롭게 변화하는 제 생각과 모습을 바라보면 클라이밍을 계속 하고 싶어져요.

 


 

제가 멋모르고 - 솔직히, 한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거였어요 - 2013년에 북한산 인수봉의 취나드A 길을 간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트래드 클라이밍에서 선등을 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캐밍 장비 또한 써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때로는 무지가 용기를 주기도 한다는 말처럼, 재밍 한 번 해볼 생각조차 못 하고 두리뭉실 잡히는 크랙의 홀드들을 무식하게 레이백 기술로 올랐어요. 제가 설치한 캠을 믿을 수 없고 그 캠에 의지해 추락이라도 하면 온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리면서 말이죠. 그런 사투를 지켜보며 빌레이를 보던 긴장 속의 친구에게 나름의 위로를 주고 싶었던 걸까요? 제 등반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었을 텐데 저는 간간이 생사를 알리는 신호로 “나 살아있어!”라고 외치곤 했어요. 처절했을 제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터져 나와요. 그래도 극도의 불안함이 놀라운 집중력과 정신력을 솟구치게 했는지 *자유등반으로 온사이트를 성공하게 되었죠. 그 당시의 제게 있어서는 정말 놀라운 결과였어요.

 

제 전공이라고 생각하는 스포츠클라이밍도 언제나 부족함 속에서 ‘ing의 과정’ 속에 있지만, 트래드 클라이밍은 특히 제게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향한 등반으로 설레게 했고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거에요. 그런 미래의 과정들 속에서 저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저 자신을 찾아갈 수 있겠죠. 그래서 나를 찾아가는 이 일련의 길이 심장을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합니다.

 

* 자유등반: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을 이용해 추락하지 않고 성공하는 등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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