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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적벽 에코독주길 완등, 기나긴 여정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은
설악산 적벽 에코독주길 완등, 기나긴 여정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은
전미현   |   Jan 05, 2022

|프롤로그

 

천불동 계곡 비선대에서 고개를 들면 살짝 옆으로 기운 듯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는 붉은 바위 하나가 보인다. 바위 색이 빨갛다 하여 적벽이라 불리며 여러 루트들이 개척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인 에코독주길을 오르는데 성공하기 위해 나는 꽤 긴 시간 여행을 했는데, 이 길을 처음으로 시도한 시점부터 성공할 때까지 5년이 걸렸다. 성공이라는 단순한 결과적 의미를 넘어서, 긴 그 시간 속에서 변화해온 내 생각과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보고 싶다. 단 몇 페이지로 모든 걸 다 표현해 낼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은 짧지만 긴, 길지만 짧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2016년

 

"미현이는 왜 이 루트를 해보겠다고 한거야?"

2016년 6월의 어느 날, 같은 실내 클라이밍짐에서 운동하는 여러 선배들과 함께 설악산 적벽 앞에 섰을 때, 그 중 한 선배가 의아한 듯 내게 물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쉽지 않은 이 루트를 등반해볼 생각을 했냐는 듯한 말투였다.

"글쎄요. 저도 딱히 제 맘을 모르겠는데 그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2년, 빌레이 도중에

그로부터 몇 년 전 여름에 당시의 남자친구는 에코독주길을 *완등했고 나는 그의 빌레이를 봐주면서 *후등으로 두어 번 등반해 본 적이 있었다. 후등으로는 그 루트의 진정한 면모를 도통 알지도 못하겠고, 더구나 그 당시 내 실력으로는 등반이라기 보다 거의 끌려 올라가다시피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길을 올랐는지 알 턱이 없었다. 어쩌면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는 와중에도 스포츠클라이머인 내가 언젠가는 도전해 볼 만한 루트라고 막연한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랬을 테다, 그러니 나도 그 이유를 똑 부러지게 알지 못한 채 "저도 에코독주길 가고 싶어요!"라 했겠지.

 


* 완등: 추락 또는/그리고 일정 지점에서 쉼이나 매달림 없이, 그리고 인공 설치물(퀵드로, 캠 등)을 잡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루트의 처음부터 끝(앵커 지점)까지 올랐을 때의 성공을 의미하는 등반 용어이다.

* 선등: 로프를 사용하여 등반할 때, 먼저 등반하는 사람은 선등(또는 리딩; leading)으로 로프를 설치하며 올라가고, 뒤에 오르는 사람은 설치된 로프를 사용해 후등(또는 톱로핑; top-ropping) 으로 등반한다.


 

에코독주길 3피치를 후등으로 등반 중

나는 그렇게 패기 넘치게 에코독주길 첫 등반에 나섰고, 등반을 마친 후 내 스스로 내린 그날의등반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에는 일년 동안 백수생활을 자처하며 해외 등반 여행을 다녔었고, 다양한 등반지에서 쌓은 경험들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 발휘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이런 평가와는 별개로, 이 루트가 어렵지 않게 언제든 완등이 가능할 만만한 루트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전통 등반과 *인공 등반이 일종의 등반 트렌드로 유지되고 있었고 각기 별개의 루트였던 에코길과 독주길은 인간 본연의 힘이 아닌 인공물에 의지한 인공등반으로 등반 되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국내에서도 자유 등반에 눈을 뜨고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설악산 적벽의 루트들도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형태의 등반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2000년에 자유 등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루트를 읽은 한 선배 클라이머(손정준, 손정준 스포츠클라이밍 연구소)의 통찰력으로 에코길 *1-2피치와 독주길 3피치가 연결됐고, 에코독주길이라는 하나의 등반 라인이 이를 증명해준다. 자유 등반으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길을 성공한 그는 국내 등반이 폭넓게 나아갈 무한의 가능성을 연 셈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많은 클라이머들이 이 루트를 시도해왔고, 완등을 이끌어낸 사람은 – 정확하지 않지만 - 10명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멋 모르고 뛰어든 나의 첫 시도는 국내에서 에코독주길이 갖는 그 가치와 의미를 똑똑히 일깨워 주었고 위압감을 느끼며 방망이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100여 미터 발 아래가 뻥 뚫린 고도감에 기가 한 번 눌리고, 등뒤로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시퍼런 천불동 계곡의 기에 한 번 더 눌리고, 루트 자체의 난해함과 까다로움에 적벽이 더욱 무시무시해 보였다.

 


* 전통 등반(traditional climbing, trad climbing): 암벽등반의 한 종류이며, 등반자가 추락 시 스스로를 보호할 확보물을 등반 도중에 직접 설치한 후, 등반 완료 후에 설치한 확보물을 제거한다. (출처: 위키백과)

* 인공 등반(aid climbing): 인공적 수단을 이용해서 홀드나 지점을 만들어 오르는 등반 방식이며, 인간 능력 외적인 방법으로 자유등반과 구별한다.

* 피치(pitch): 사용하는 로프의 길이 내에서 등반자가 오를 수 있는 등반의 거리 단위를 일컫는데, 한 피치는 바위의 모양새에 따라 그 거리를 길게 또는 짧게 임의적으로 정하여 앵커를 설치하기 때문에 등반 거리와 로프의 길이는 항상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해 여름, 마침 적벽의 또 다른 루트인 교대길을 *프로젝트로 잡은 (김)종오 선배 (클라이밍파크대표)와 나는 일명 ‘적벽 프로젝트 파트너’가 되어 무더운 날씨를 뚫고 5번 정도 등반을 했다. 프로젝트는 폭염이 온 후에야 시작되었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내 몸과 바위가 뿜어내는 땀이 한데 뒤섞인 채 여름을 보냈다. 나는 과연 이 등반에 대한 의지가 있었던 걸까.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매번 2피치까지만 올랐었다. 1피치는 첫 시도 때 이미 추락 없이 완등했기 때문에, 폭염 속에서는 2피치 동작을 풀고 완등하는 데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너 번째 시도 후 1, 2피치를 모두 완등한 날에야 비로소 3피치의 동작을 제대로 풀어보게 되었는데 때는 이미 단풍이 붉게 물드는 계절로 접어들었고 시즌은 아쉽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더구나 그러는 사이에 종오 선배는 교대길을 완등해 우리의 파트너쉽은 그렇게 끝이 나버리고, 내 프로젝트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로 미루어야 했다.

 


* 프로젝트: 각자 현재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몇 번의 시도만으로 완등하기에 어려운 루트일 때, 장기적으로 연마하고 완등할 때까지 계속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등반 용어이며, 해외 클라이머들 사이에서도 프로젝트(project)”라고 표현한다.


 

속된 말로 ‘개념 없이’ 한 번 가보겠다고 생각했던 첫 시도와는 다르게, 에코독주길을 프로젝트로 잡겠다고 마음 먹은 데에는 극명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해  몇 년 전부터 헤어나기 힘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등반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어떠한 의지와 의욕을 보이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니 등반에 대해서도 넓은 범주의 목표가 있다거나 꼭 완등을 해보고 싶은 특정 루트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무심코 시도해본 에코독주길에서, 마음이 만신창이 같았던 내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를 열정적으로 쏟아 붇고 싶을 만큼의 강력한 끌림을 느꼈던 것이다. 이 루트였다, 아니 이 루트를 위한 나의 일련의 발걸음은 내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길, 결국 나를 찾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


 

|2017년

하지만 언제나 모든 상황이 나만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다음 해 봄이 되어 이번에는 크로니길을 프로젝트로 잡은 종오 선배와 또다시 적벽 앞에 섰지만, 바위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 이외에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 즈음에 이직을 했던 나는 새로운 회사생활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등반과 운동에 쉬이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 모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프로젝트를 또 다음의 미래로 미루기로 했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지금 당장은 물러나더라도 내 생각의 끈, 즉 의지만 놓지 않는다면 그 언제라도 다시 이 길을 오르면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으니까.

 


 

2017년, 에코독주길 2피치 등반 중

|2018년 그리고 2019년

'기다려. 꼭 돌아 갈게.'라는 말을 남겨놓은 채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한동안 바위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없었다. 2018년에는 손가락 골절 부상으로 6개월 이상 등반에서 멀어져야만 했고, 그 다음 해 2019년에는 난데없이 *이석증이 찾아와 재발에 재발을 거듭하며 1년 내내 나를 괴롭혔다. 첫 시도 이후에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처럼 에코독주길은 내 마음 속에 계속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선대 앞을 지나칠 때면 꼭 한번은 가던 자리에 멈춰 서서 하염없이 적벽을 올려다 보곤 했는데, 적벽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 이석증: 내이의 반고리관에 발생한 이동성 결석으로 인하여 유발되는 어지럼증. (출처: 네이버)


 

|2020년

2020년 2월과 3월에, 멕시코 엘 뽀뜨레로 치꼬(El Potrero Chico)로 등반을 다녀왔다. 그 어떤 등반여행보다 보람 찬 등반을 했다는 생각에 등반 컨디션은 물론 자신감이 상승해 있던 때였다.  당시에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적 그리고 이에 따른 심적 여유가 충분했다. 가장 운이 좋았던 건 멕시코에 함께 다녀왔던 (배)진학 오빠가 빌레이를 봐주겠다고 먼저 제안해 왔다는 점이다. 그 해 봄 스포츠클라이밍의 메카인 *선운산으로 매주 등반을 다니면서 에코독주길을 위한 트레이닝은 시작됐고, 설악산의 문이 열린 6월에 나는 다시 그 길의 시작 지점에 서게 되었다.

 


* 선운산: 1990년대 초에 개척되어 현재까지 200여개의 루트가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클라이밍 등반지이며 크게 속살바위와 투구바위 섹터로 나뉜다.


 

2020년, 적벽 앞에서 (Photo : 배진학)

3년 만에 마음을 잡고 또 등반을 위한 체력을 준비하고 올라본 에코독주길은 확실히 그 전과는 달랐다. 이 길을 시도하던 그 지난 시간에 나는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이 여름에 총 3번을 다녀가는 동안 가장 높은 난이도인 3피치의 동작을 모두 풀 수 있었고, 완등의 가능성이 보일 정도로 동작들을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다음에 한 두 번만 더 가면 완등을 노려볼 수 있겠다고 기대하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그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한 달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내렸다.

 


 

2020년, 에코독주길 1피치, 2피치, 3피치 등반 중 (Photo : 김민경)

기상 이변이었다. 전국은 물 폭탄을 맞은 듯 초토화 되었고 출퇴근길 - 그러는 사이에 나는 다시취직을 했다 - 에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한강공원에 가득 들어찬 황토 물을 보며 적벽, 아니 내 프로젝트를 걱정했다. 기나긴 장마는 설악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고 모든 계곡 길은 다리가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등반은 당연히 금지였다. 나의 몸과 마음, 빌레이를 봐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고마운 사람만 있으면 모든 것이 완벽할 줄로만 알았는데, 내 짧은 생각이 빚어낸 착각이었다. 천재지변은 인력으로 넘어설 수 없었다.

그렇게 또,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언제까지 이 기다림이 이어지는 걸까. 하지만 몇 년의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혀 보니 한 가지 진리 같은 것이 내게 남겨졌다. 주변 상황(빌레이어, 날씨 등 외부적 요인)만 갖춰 진다면, 언제든 에코독주길을 오를 수 있도록 내 몸과 마음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삼박자가 고루 맞아서 금새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적벽의 루트들은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심신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필요로 했다, 물론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단숨에 해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해 가을부터 다시 매주 선운산으로 향했고 트레이닝을 위한 등반은 올해 봄까지 이어졌다. 실내 클라이밍짐에서의 운동이 더 이상 발전하기 쉽지 않을 만큼 오래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딱히 끌리지 않을 만큼 잃어버린 흥미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던 나는 마침 코로나를 핑계 삼아 실내가 아닌 바위 등반에 집중하게 되었다. 다양한 바위에서 많은 등반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도 실내 트레이닝 효과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2021

봄 내내 선운산에서 트레이닝을 하면서도 사실 적벽 등반은 미정의 계획으로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중요한 빌레이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2020년 가을부터 선운산을 함께 다니던 (이)소희 언니가 적벽을 함께 가주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반신반의했지만 – 그녀는 후에 ‘많은 고민을 하고 후회도 하면서 어렵게 뱉은 말’이라고 덧붙였다 - 말만으로도 내게는 기쁜 일이었다. 내 몸과 마음은 준비가 되어도 그 등반을 만들어줄 수 있는 파트너가 없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기운이 솟았다. 어쩌면 그녀의 그 한마디가 선운산 (트레이닝) 등반을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의욕 없이 지지부진하게 끌고 오던 ‘Best of Best(5.13b)’를 완등하게 된 것도 사실은 다 그 덕분이었다고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2021년 5월, 선운산 속살바위 Best of Best(5.13b) 등반 중 (Photo : 박경민)

|2021년 6월

 

2021년 6월 첫째 주 주말, 다시 일년 만에 찾아간 에코독주길에서 작년보다는 기량이 좋아진 걸 느꼈고 지금에 비하면 작년의 내 등반도 많이 부족했음을 알았다. 작년 여름에, 그 몇 년 전의 내 등반이 부족했음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해가 갈수록 내 등반은 나아지고 있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희망이 보였다. 게다가 건강해진 내 심신과 믿음직한 빌레이어가 있으니 작년처럼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커져 갔다.

"날씨야, 제발 부탁한다!"

 


 

이제는 수도 없는 이직과 백수 생활이 익숙할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한 달 전에 이직을 한 나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을 위한 컨디션 조절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급기야 금요일에는 예상치도 못하게 늦은 퇴근까지 해야 했다.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컨디션을 탓하며 "망했다!"고 심리적으로 주춤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걱정 따위는 되지 않았다. 걱정보다는 내 의지가 강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해석해본다.

|2021년 6월 19일 토요일

올해 에코독주길을 시작한 후 세 번째로 가는 날이었다. 쉽사리 떠지지 않는 묵직한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려서 차를 몰았다. 휴가철이 다가오는 모양인지 운전 4시간 만에, 꼬리에 꼬리를 문 기나긴 차량 대기 행렬 끝의 신흥사에 주차할 수 있었다.

"오늘도 땡볕에서 등반하게 생겼네!"

 


 

소희 언니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이제 막 해가 내 등 뒤로 돌아와 내리쬐기 시작한 바위 앞에 섰다. 신기하게도 *적벽의 정면 루트에는 그 누구도 등반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에도 뜨겁게 등반하게 생겼지만 앞서 등반하는 팀 때문에 정체가 되거나 뒤따라 오는 팀에게 쫓기는 일 없이 마음 편하게 등반할 수 있겠다며 여유를 부렸다. 적벽 앞으로 건너가는 너른 바위에 손을 얹으니 바위는 이미 태양에 달궈져 후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등 뒤의 태양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바람은 시원하게 잘도 불고 있었다.

 


* 적벽 정면에는 현재 총 3개의 루트 - 에코독주길, 교대길, 크로니길 - 가 등반되고 있다.


 

|오전 11시 50분경, 에코독주길 시작 지점

 

이 길을 시도한 이래로 1피치에서 추락을 해본 적 없이 없었다. 행여나 이번에는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첫 피치를 시작하기 전에 느끼는 긴장감은 화장실을 가야할 듯 배를 살살 아프게 한다. 그래도 올해 들어 세 번째 시도라고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출발 직전에 크게 내몰아 쉰 긴장의 호흡이 무색할 정도로 편안하게 *1피치(5.11+)를 오르고 있었다. *오버행의 *크럭스를 넘어선 이후로는 크랙처럼 생긴 크랙 아닌 크랙을 괜스레 들여다보며 등반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1피치 앵커지점에서 완료를 외치고 언니가 뒤이어 올라오고, 장비를 건네 받고는 암벽화를 신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손에 초크칠을 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가끔씩 손과 발 동작의 순서가 꼬이는 2피치(5.12+)의 하단 부분도 대체로 매끄럽게 이어나간다. 크럭스 전 쉬는 구간에 굴처럼 위로 깊숙이 파인 큰 구멍이 있는데, 그 안에서 박쥐가 "찍찍'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를 위협하는 듯한 소리였는데, 박쥐가 내게 날아들까 무서워 "알았어~ 빨리 갈게~"라는 말을 내뱉으며 크럭스로 곧바로 진입한다. 올해 첫 시도부터 추락하지 않고 완등 해왔는데, 동작이 많이 익숙해졌는지 가쁜 호흡이나 펌핑도 없이 2피치 앵커에 *확보줄을 건다. 개운하다. 3피치 처마 밑을 시원하게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개운하기도 잠시, 소희 언니가 올라온 후 정해진 메뉴얼처럼 나는 다시 장비를 건네 받고 암벽화를 신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손에 초크칠을 한 후 깊은 숨을 천천히 내몰아 쉰다.

 

“흡! 후우~~~~~”

 

3피치를 오르기 전에 느끼는 긴장감은 1피치를 시작할 때의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이제 드디어 정면으로 부딪혀야 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결전의 날이 온 기분이랄까. 완등은 하고 싶지만 그 마음이 부담스러워서 이 시간이 어떻게든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곤 했었다. 차라리 추락이라도 하고 나면 – 아쉬움은 남겠지만 - 온전히 내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이 지독한 긴장감은 사라질 테니 말이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가 말한다.

"다시 한번 동작 푼다 생각하고 가. 내일도 있잖아."

장마는 다가오는데 맘이 조급해졌고, 이번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한 번씩 시도해 보기로 하고 온 것이었다. 사실 내 이런 부담스러운 마음의 또 다른 한 편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1, 2 피치에서 평소보다 좋은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저 지금 완등하면 우리 오늘 서울 올라가는 거예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지만, 괜한 방정 떨지 말자는 생각이 내 입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숨을 몰아 쉬고 침착하게 가자는 생각으로 힘있게 *“클라이밍!"을 외치고 3피치(5.13-)를 향한 발을 뗀다.

 

* 로프 등반에서 각 루트의 어려움 정도를 숫자와 알파벳으로 표기한 미국 요세미티 등급 체계이며, 우리나라는 미국식 난이도 체계를 따른다. 암벽은 숫자 5부터 시작되며 암벽등반의 기술 및 장비를 이용해야 하는 루트는 5.6부터 등급을 매기는데, 5.6부터 5.9까지는 소수점 이하 1자리에서 숫자 하나씩 올리며, 5.10부터는 다시 알파벳 a~d로 세분화된다. 현존하는 최고 난이도는 5.15c이며 5.15급 이상을 등반하는 클라이머는 전세계적으로 단 몇 명에 불과하다.

종종 등급 숫자 뒤에 +/-가 등장하는데, 루트의 세분화된 등급이 알파벳 a와 b의 구간에 속할 때 ‘- (마이너스)’로, 알파벳 c와 d의 구간에 속할 때 ‘+ (플러스)’로 표기한다. 세분화된 알파벳으로 난이도를 책정하기 모호하고 난해할 때 +/- 체계로 대신하기도 한다.

* 오버행(overhang): 바위가 지면으로 기울어진 각도가 90도 미만일 때 바위의 형태를 부르는 말이다. 각도가 90도 정도이면 페이스(face), 90도 이상이면 슬랩(slab)으로 부른다.

* 크럭스(crux): 한 루트 또는 한 피치 내에서 가장 어려운 동작을 요하는 구간을 부르는 용어다.

* 확보줄: 한 피치 등반을 마치고 난 뒤 앵커 스테이션에 등반자의 몸을 안전하게 연결하여 매달려 있게 하기 위한 장비이며, 확보물은 등반자가 착용한 안전벨트(하네스)에 달린 고리에 연결한다.

* 클라이밍(등반 중에 구어체로 사용 시): 등반자가 빌레이어에게 등반을 시작한다고 알리는 신호(말)이다.


 

2017년, 에코독주길 3피치 등반 (Photo : 신성훈)

피치의 중간에 있는 크럭스 직전까지 동작이 꼬이지 않아야 최대한 힘을 아낄 수 있고 크럭스 동작에서 부담이 덜 할 터다. 그 생각만 떠올리며 한 동작 한 동작을 신중하게 움직이고 크럭스 동작 직전의 좋은 홀드를 잡고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충분히 쉰다. 펌핑이 나고 있다거나 앞으로의 펌핑이 두려운 마음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고 나는 크럭스 동작을 향해 돌진한다.

크럭스의 연속적인 몇 동작을 하는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들이 간간이 내 기억에 없다. 집중력이 무아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크럭스의 왼손 홀드를 낚아채고 내 몸이 상승하는 순간에 "아! 잡혔다!". 그 다음의 까다로운 두세 동작에서 또 기억이 흐릿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자세를 잘 잡고 볼트에 *클립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펌핑은 나지 않았지만 마치 통과의례처럼 다음을 위해 준비라도 하듯이 양쪽 손을 기계적으로 몇 번 털어본다. 이제는 내가 보이지 않을 소희 언니에게 미리 '앞으로 볼트 3개 남았어요!'라고 말을 해줄까도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자칫 내 호흡이나 리듬이 깨질 것 같아 그 말을 그대로 삼키며 다음을 진행한다.

짧은 3피치에서 크럭스는 한 군데처럼 보이지만 잠재적인 크럭스, 즉 자칫 긴장을 늦추면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간이 줄지어 도사리고 있다. 다음에서 크랙처럼 생긴 포켓 홀드들을 따라 오른손과 왼손의 순서와 발 위치만 꼬이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침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음 볼트에서 클립을 하고 좋은 홀드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 다음 동작을 그려본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동작, 한 동작 나아가 다음 볼트에 클립, 또 양손을 털며 다음 동작을 머리 속에 차분히 되새긴다. 드디어 마지막 볼트로 향하는 페이스 구간에 돌입하는데 이 구간에서는 내 몸에 묶여있는 로프의 아래쪽 끝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내 발 바로 밑에서 거침없이 흐르는 계곡만 보인다. 몇 백 미터 상공에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발 동작에서 실수가 나지 않게 눈을 부릅떠 집중력을 모아본다. 여전히 펌핑은 나지 않았고 그런 덕분에 차분하게 공포의 페이스 구간을 건너 마지막 볼트를 지난다.

마지막 볼트를 클립하는 자세가 내게는 영 어정쩡하고 별로 좋지 않게 느껴지곤 했다. 그 볼트가 생기기 직전에는 크게 뚫린 크랙 같은 곳에 2호 캠을 얹혀 놓았었는데, 나는 볼트를 지나쳐 캠을 설치하던 구간까지 올라간다. 볼트는 허리춤보다 살짝 아래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에서  클립을 하는 것이 동작의 흐름 상 나은 듯했다.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볼트를 지나쳐 크고 좋은 홀드를 잡은 뒤 클립을 한다. 내 입은 함박꽃처럼 벌어져 기쁨에 웃고 있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마지막 몇 동작만 더 오르면 되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침착하기로 한다. 여기까지 와서 실수가 생겨 코앞에서 완등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행여나 내 섣부른 환호 소리에 빌레이어가 '추락인가?' 또는 '무슨 일인가?' 하며 당황스러워 하며 로프를 당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이 순간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손을 턴다. 차분하게 마지막 몇 동작을 오르고 앵커에 확보줄을 건 뒤 평소보다 훨씬 절도 있게 아래를 향해 외친다.

"완!료!"

 


* 클립(clip): 바위에 설치되어 있는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그 퀵드로에 로프를 거는 행위를 일컫는다.


 

|오후 1시경, 에코독주길 3피치 정상

 

언니가 "완료!"라고 되받아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확보줄에 온전히 매달리며 환호성을 두어번 연속해서 내지른다. 그리고 통쾌한 웃음인지 감동의 울음인지 알 수 없는 내 얼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

‘내가 에코독주길을 끝내다니!’

 

크럭스를 지난 후 한 번쯤은 마지막 구간에서 긴 추락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편안하게 올랐다는 데에 스스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뒤이어 올라온 소희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축하인사를 건네고는,

 

"근데 너무 허무하지 않니?"

​"하하하! 그죠? 크럭스 지나서 한번은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날의 바람은 굉장히 좋았다. 마치 바람이 나를 올려주기라도 하듯 아래에서 위로 불고 있었다. 하필이면 완등하는 날 핸드폰도 안 들고 올라왔다며 안타까워하던 소희 언니와 나는, 바로 위 삼형제길 앵커에 매달려 있던 모르는 클라이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뭐든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름은 커녕 소속 산악회조차 여쭙지 못한 그 분에게 기쁨의 순간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에코독주길 3피치 정상에서 빌레이어(우)와 함께

* 등반 기록

- 총 3피치: 5.11+/5.12+/5.13-

- * 싱글 푸시(Single Push) 완등

- 소요 시간: 약 2시간 (12시 - 14시, 2인 1조)

- 소요 장비: 로프 75미터 1동, 퀵드로 10개, 알파인드로 2개, BD 캠 0.2호 1개, 0.75호 1개

- 하강: 자유2836 루트로 3회

 

 

​​오후 2시경, 배낭과 신발을 두고 온 제자리

 

적벽의 측면에 있는 루트 몇 개에는 클라이머들이 줄을 지어 등반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와 소희 언니는 등반하는 사람들을 헤치느라 한참이나 걸려서 등반을 시작했던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내 기분처럼 시원스럽게 새파란 그림 같은 하늘을 배경 삼아 ‘생애 첫 등반을 마친 벅차는 표정 (나중에 이 사진을 본 진학 오빠의 표현을 빌리자면)’으로 이 시간을 사진 한 장 속에 박제했다

 


* 싱글 푸쉬(single push): 멀티피치 루트를 레드 포인트(red point)로 등반할 때, 해당 시도에 모든 피치를 한번씩의 시도만으로 완등할 때를 말한다. 온사이트(onsight) 또는 플래싱(flashing)처럼 첫 시도의 등반을 성공했을 때와는 별개의 개념이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Photo : 이소희)

몸을 짓누르듯 감싼 장비를 벗어 정리를 하고 배낭을 꾸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산을 시작하고 불과 몇 발짝 내려간 지점에서 기련 선배와 우연히 마주쳤다. 나를 보자마자,

 

“미현이 에코독주 완등한거야?”

“어떻게 아세요?”
“장군봉 정상에서 보고 있었지.”

 

나와 소희 언니 외에는 그 누구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운 등반이 될 줄 알았는데, 더 기뻤다.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 그려진 내 등반 그리고 완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흔한 사진 한 장, 영상 하나 없지만 여전히 내 모습은 머리 속에 남아 지워지지 못할 것 같다.

 


 

신흥사, 하산을 마치고

이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로 5년 동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없었다. 내 몸과 정신은 물론이고 빌레이어와 날씨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내 등반을 존중했고 자신도 있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당장 다음 주말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은 더 애가 닳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결국 내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했던 것이 이 모든 상황을 좋게 만들어 주지 않았을까 한다. 내가 열정적으로 등반하고자 하는 모습이 없었다면 소희 언니도 과연 나를 끝까지 지지해 줄 수 있었을까? 내 의지와 열정이 없었다면 지지부진하게 이 등반을 끌고 가다가 또 장마가 시작되고 어쩌면 날씨 핑계나 대지 않았을까? 내 열정에 스스로 감사하고, 이런 내 열정을 알아봐 주고 지지해 준 소희 언니에게 감사하고, 또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내게 있어서 기념비적인 이 완등 순간을 함께 한 소희 언니는 내가 에코독주길을 처음으로 등반해 보던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긴 차량 행렬 속에서 언니가 일깨워 준 사실이었다. 그녀와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니 더욱 감동적이다. 완등을 만들어준 소희 언니뿐만 아니라, 작년에 빌레이를 봐준 진학 오빠, 이 길을 처음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종오 선배까지 모두의 조언과 지지 그리고 응원이 있었기에 오늘의 완등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감사하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에필로그

 

2016년 여름부터 2021년 여름까지, 에코독주길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던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은 너덜너덜했고 여러 번의 이직과 퇴사, *펀임플로이드로 정의 내리고 싶은 백수생활을 반복했고 또 몸도 아팠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아픔을 달래주는 길, 나를 찾아가는 길, 그래서 올랐던 이 길이 막을 내렸다. 아픔은 사실로 영원히 남겠지만 나는 그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등반을 통해 많이도 성장했고 나를 더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미련스럽게 쥐고 있던 것들을 잘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지만, 단단한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모든 좋고 나빴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진하고 값진 경험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내게 또 어떤 등반과 인생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또 얼마나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줄지 몹시도 설렐 뿐이다.

 


* 펀임플로이드(fun-employed): 직장이 아닌 즐기는 인생에 고용된 상태를 이르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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