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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좋은 날은 서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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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을 사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왔습니다. 저는 등반, 서핑, 카약,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며 대장장이입니다. 저와 친구들이 원하는 좋은 장비와 기능이 뛰어난 옷을 만드는 일이 그저 즐거웠습니다.

제 자신을 사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왔습니다. 저는 등반, 서핑, 카약,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며 대장장이입니다. 저와 친구들이 원하는 좋은 장비와 기능이 뛰어난 옷을 만드는 일이 그저 즐거웠습니다.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알아야만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 이본 쉬나드

제 자신을 사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왔습니다. 저는 등반, 서핑, 카약,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며 대장장이입니다. 저와 친구들이 원하는 좋은 장비와 기능이 뛰어난 옷을 만드는 일이 그저 즐거웠습니다. 아내 멜린다와 저는 고물 자동차와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는 무너질듯 낡은 집만 갖고 있었습니다. 1975년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다니는 우리 회사는 자본금에 비해 차입금 비율이 훨씬 높았고 직원들은 우리만 바라봤습니다.

회사에 대한 책임과 갚아야 할 부채를 깊이 생각하던 어느 날은 제 자신이 사업가가 된 것 같아 그리고 오랫동안 사업가로 살아가야 할 것 같아 우울해졌습니다. 사업에서 살아 남기 위해 더욱 진지해져야 함은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제 자신이 절대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사업가가 되어야 한다면 나만의 방식대로 일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일은 나날이 즐거워야 합니다. 일터로 오는 발걸음은 계단을 한 번에 두 개씩 뛰어 오를 듯 가벼워야 합니다. 마음대로 옷 입고, 맨발로도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자유로워 파도가 좋은 날은 서핑을 하고, 큰 눈이 내리면 스키를 타고, 아이가 아픈 날은 집에서 아이를 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 놀이,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까지 파타고니아 매출은 2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성장했습니다. 멜린다와 저는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회사 돈으로 고스란히 보관했습니다. 많은 면에서 성장은 우리를 흥분하게 했습니다.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신규 직원들, 매장과 물류 창고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던 직원들 급여도 꽤 많이 올려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몇몇 자리에 의류와 아웃도어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직원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채용한 직원 대부분은 근본이 튼튼하고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장과 더불어 파타고니아만의 문화 가치를 많은 부분에서 지키려고 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일하러 왔습니다. 점심 시간에는 달리기나 서핑을 즐겼고, 사무실 뒤 편 모래 사장에서 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성장하면서 아웃도어라는 특수한 시장에서 우리의 자연스러운 규모를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회사는 계속 성장했고, 성장이 계속된다면 10년 안에 10억 달러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될 것 같았습니다.

감당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연 파괴라는 문제도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네팔, 아프리카, 폴리네시아로 등반, 서핑, 낚시하러 갔을 때 몇 년 전에는 없었던 자연 훼손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숲과 초원이 사라져 갔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등반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빙하들이 녹았습니다. 에이즈와 에볼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 고기를 비롯한 야생 동물 고기 판매와 열대 우림 벌목과 함께 생겨났습니다.

소련이 무너지기 전 러시아 동쪽 멀리에서 카약 여행을 할 때 미국과 무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러시아가 자신들의 땅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 근처에서는, 캘리포니아 남쪽 해안과 언덕을 가차없이 포장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여름을 보냈던 와이오밍에서는 야생 동물이 덜 보였고, 물고기 크기도 작아졌으며, 기온이 기록적으로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자연 파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흙과 지하수 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열대 우림이 벌목되고, 멸종 위험에 처한 식물, 동물, 새 종류가 늘어나고, 오염되지 않은 북극에 사는 사람들도 산업에서 생긴 독성 물질 때문에 물고기와 동물을 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는 자료들을 읽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파타고니아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애쓰는 작은 단체들의 싸움에 대해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업과 협력하는 큰 비정부 기구(NGO) 대신 지역 사회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작은 환경 단체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이 단체들에 매년 이익의 10%를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매출의 1%와 세전 이익의 10% 중 큰 금액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이익이 나든 적자가 나든 우리는 이 약속을 매 해 지키고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지구의 환경 위기와 더불어 우리 자신을 살피고 회사로서 일으키는 환경 오염도 줄여 나가기로 했습니다. 1984년부터 재활용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재활용 물질 함유 비율이 더욱 높은 종이를 찾아서 카달로그를 만들었습니다. 1990년에는 미국 최초로 재활용 종이로만 카달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재활용 종이로 바꾼 첫해 시간당 3,500,000 킬로 와트의 전력과 물 23,000,000 리터를 절약했고 공기로 배출하는 오염 물질 24톤과 쓰레기장에 쌓일 고체 쓰레기 1200 입방 미터를 줄였고, 나무 14,500 그루를 벌목으로부터 지켜냈습니다. 회사 건물을 짓거나 보수할 때 환경 친화적이거나 재활용 소재를 찾고 선구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웰맨(Wellman)과 몰든(Malden) 공장과 함께 개발한 재활용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신칠라 플리스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성장은 계속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거둔 엄청난 성공 덕분에 성장이 절대 끝나지 않으리라 믿기 시작했습니다. 성장을 계속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1991년 매년 30%~50%씩 계속되던 성장이 벽에 부딪쳤습니다. 미국 경제가 불황에 접어 들었고 우리가 계획했던 성장과 판매가 모두 멈추었습니다.

위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파타고니아가 가장 많은 대출을 받은 금융 기관이 위기에 빠지자 신용 한도도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대출 금액이 줄어들어 지출도 과감하게 줄여야만 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한계를 넘어서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에 의존하게 되어 우리 스스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작은 회사였지만 문제를 무시하거나 사라지기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을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실행 방안을 도입해야만 했습니다. 정해진 규칙을 깨나가야만 했습니다.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높은 팀장 12명을 데리고 아르헨티나로, 바람이 거세게 부는 진짜 파타고니아로 갔습니다. 자연 속에서 거닐면서 우리가 왜 사업을 하는지, 우리가 바라는 파타고니아 사업은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습니다.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인가? 하지만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가 사업을 하면서 일으키는 환경 피해 해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우리가 공감하는 가치와 파타고니아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성장은 파타고니아가 성공적으로 만들어 온 가치를 위험에 빠뜨림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가치들은 업무 매뉴얼에 글로 쓸 수 없습니다. 바르게 질문하고 알맞은 해답을 확실하게 찾기 위해 철학적, 영적 안내가 필요했습니다.

팀장들이 매출과 자금 운영 위기를 차근차근 해결하기 위해 논쟁을 벌일 때, 저는 “철학 수업”이라고 부르는 일주일 기간의 직원 세미나를 이끌었습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요세미티나 샌프란시스코 위 쪽에 있는 마린 헤드랜드로 가서 텐트를 치고 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든 직원들에게 파타고니아의 사업, 환경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를 알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회사 안에 스며들게 하려 애썼던 일들은 제가 클라이밍, 서핑, 카약, 플라이 낚시에서 이미 배웠던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항상 소박하게 살려 했고 자연의 상태에 대해 알게 된 1991년부터는 유통 과정이 단순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으며 물건 소비를 줄였습니다. 위험한 스포츠를 하면서 “한계를 절대 넘어서지 말라”는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한계를 확장하거나 한계에 닿기 위해 살기도 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안됩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야만 합니다. 강점과 한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성을 잃고 해야 하는 일과 다른 일을 하려 드는 회사일수록, “모든 것”을 다 다 가지려 드는 회사일수록 더욱 빨리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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