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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현|클라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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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추위에 약한데 도대체 옷을 어떻게 챙겨 입어야 하나 옷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가뜩이나 추위에 약한데 도대체 옷을 어떻게 챙겨 입어야 하나 옷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테스터|전미현 · 클라이머

착용 제품|Women's R1 TechFace Hoody S size

테스트 기간|7일

 

Done In An R1: R1으로 해내다

선인봉 남측오버행 크랙 (5.12-)

꽃이 피어야 할 3월 말에 전국 여기저기 산에 함박눈이 내린다고 난리였습니다. 이런 날 도봉산 강적 크랙으로 등반을 간 사람들은 눈발이 사방팔방 날리는 가운데 등반하는 영상을 보내줬습니다. 다음날 선인봉 남측오버행 크랙 등반이 잡혀 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눈이야 멈추면 그만이지만 눈이나 비가 내린 후 기온은 뚝 떨어질 게 분명했고 예보에서는 한낮 최고 기온이 8도 정도였습니다.

 

가뜩이나 추위에 약한데 도대체 옷을 어떻게 챙겨 입어야 하나 옷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남측오버행은 주변이 뻥 뚫려 바람 피할 데가 없는 곳이니까 일단 바람을 막아줄 ‘R1 TechFace Hoody’ 자켓을 겉에 입고 등반해야지 싶었습니다. 기온이 조금이라도 높다면 자켓 속에 반팔만 입어도 안쪽 면에 fleece 소재가 있어서 괜찮을 듯 싶은데, 그랬다가는 얼어 죽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어떤 셔츠를 함께 입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옷은 참 많은데 함께 레이어링 해서 입을 마땅한 옷이 딱히 없었습니다. 결국 얇은 메리노울 긴팔과 파타고니아 ‘Nano Air Vest’에 ‘R1 Techface hood’를 입기로 했습니다. 아웃도어 옷이든 일상생활 옷이든, 아무리 옷이 많아도 입을 옷 없다고 징징대는 것도 똑같고, 뭘 입을지 한참 고민하는 것도 똑같다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습니다.

 

도봉산역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저 멀리 선인봉을 바라보니 하늘은 기가 막히게 파랗고 해도 쨍했습니다. 눈보라가 먹구름과 미세먼지는 몰고 갔지만 그 빈 자리에 끔찍한 바람을 남겨두고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측오버행 앞에 서니 해는 따뜻해서 좋은데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대고 있었습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손을 호호 불며 등반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가 다운 자켓을 벗고 차갑게 얼어버린 암벽화 안으로 발을 힘겹게 꾸겨 넣어 보았습니다. 등반을 하다 보면 금방 몸에 열이 날 거라고 열심히 내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어떤 종류의 현실이든 자신과의 타협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날씨는 춥지만 등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켓 팔목을 걷어붙였습니다. 손목 부분에 벨크로가 아닌 신축성 있는 밴드 형식의 얇은 원단이 대어져 있어서 팔뚝에 착 감겨 올라가 편하게 붙었습니다. 차가운 바위는 극도로 건조해져서 평소보다 더욱 미끄러울 것 같아 손에 초크가루를 듬뿍 묻히고 첫발을 내뎠습니다.

 

바닥부터 시작해 *크럭스가 시작되는 중단부의 넓은 크랙 부분까지는 *레이백으로 손을 털며 오릅니다. 그 구간을 지나니 점점 손이 얼어버리면서 홀드를 움켜쥐던 손이 깨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추위에 정신이 없어서 손과 발 동작이 꼬이면서 그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크럭스: 등반 루트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을 일컫는 말

*레이백: 수직으로 갈라진 틈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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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수록 손은 녹지만 암벽화 속에서 찌그러져 있는 발끝은 점점 감각이 없어지고 가뜩이나 작은 발홀드가 디뎌지는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발을 딛고 일어서려면 손 *재밍이 크랙에 먹어줘야 하는데 내 재밍 기술은 정말이지 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형들은 뒤에서 쑤셔 넣고 비틀라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믿음이 없어서 동작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손을 쑤셔 넣은 것도 아니었는지, 올라서려는 동작을 취하면 손이 나사 풀리듯 크랙에서 풀어집니다. 되지도 않는 재밍을 하겠다고 용을 쓰면서 어떻게든 올라가긴 해야하니 온 몸을 바위 벽면에 기대어 비비적거리며 크럭스 부분을 올랐습니다. ‘Techface hoody’를 입은 건 이번이 두 번째라서 거의 새 옷이나 다름이 없는데 바위에 긁힐까봐 신경이 쓰였지만 다녀와서 보니 예상 외로 멀쩡했습니다.

*재밍: 좁은 틈에 손이나 손가락 등을 집어넣는 기술

 

​턱을 넘어서 상대적으로 벽의 각도가 줄어드는 부분부터 앵커까지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오른 것 같습니다. 아무리 *톱 로핑 등반이라고는 하지만, 크럭스 부분에서 등반이라고도 할 수 없는 몸짓을 했으니, 여기만큼은 텐션없이 가야지 그나마 할 일은 했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 것 같았습니다. 펌핑된 손을 털며 손과 발자리를 조심조심 찾아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톱 로핑: 위쪽 확보지점에 설치된 확보물에 로프를 통과시켜 빙벽이나 암벽 아래에 있는 확보자의 안전한 확보를 받으며 등반하는 방법

 

상단까지 오르니 바람은 더더욱 미친듯이 불어 댔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바위를 더욱더 차게 만들었지만 등반으로 열에 오른 내 몸은 자켓 안에서 열기로 습하게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Techface hoody’가 바람을 꽤 잘 막아 주면서도 통기성도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날씨가 춥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어쩔 수 없이 기능성 자켓은 입어야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자켓을 입고 등반하면 동작에 방해가 되어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었습니다. 특히나 대부분의 방풍 자켓은 소재의 특성상 뻣뻣하고 사각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활동 동작의 범위가 큰 등반에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소재가 얇고 신축성이 좋은 ‘Techface hoody’는 티셔츠를 입은 듯 등반 시에 동작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심지어 제가 가장 신경 쓰였던 건, 하네스 위로 빠져나올 듯 팔을 높이 뻗을 때마다 기어올라가는 기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밑자락을 밑으로 끌어내리면서 허옇게 드러나는 허리를 덮어주곤 했었는데, ‘Techface hoody’는 기장이 엉덩이를 반 정도 덮게끔 되어 있어서 그런 수고는 덜 수 있었습니다. 등반 완료 후에 바닥으로 하강해서 보니 자켓이 등반 시작하기 전처럼 그대로 있었습니다. 검정색 자켓 여기저기에 초크칠이 하얗게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게 조금 신경 쓰일 뿐이었습니다. 새 옷이라 아까운 마음에 신경도 쓰이지만 아무래도 초크가루가 섬유에 자주 묻게 되면 소재가 건조해져서 얇아지고 금새 낡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루트와의 사투를 벌이기에도 혼줄이 빠지는데 쌩쌩 부는 바람과 추운 날씨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전쟁 같은 날이었습니다. 도움 하나 주지 못하면서 쨍하게만 빛나는 해가 참 야속했고, 제발 다음 번에는 날씨 핑계를 절대 삼지 못하는 날이기를 바랐습니다. 4월이 되면 기온이 확연히 올라가고 조금씩 포근해지기 시작할 텐데,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는 아주 훌륭한 날씨일 것입니다. 단지 아쉬운 건 ‘R1’을 입고 등반하는 시기에는 이 루트를 완등할 가능성이 아주 낮아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제품의 메인 카피처럼 ‘Done in An R1’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현실에서 조금은 떨어진 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에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잠시 생각해봅니다. 올해 가을이 되었든 내년 봄이 되었든 ‘Done in An R1’이 아니라도 좋으니 언제라도 끝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다 똑같을 사람의 마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전미현|클라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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