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agonia

명예의 해녀
키미 워너는 제주도로 떠난 여행에서 모성애, 문화, 다이빙 그리고 ‘해녀’로 알려진 한국의 “바다의 여인들”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뿔소라를 잡기 위해 해초 줄기의 바닥까지 내려가서 한 해녀가
키미 워너에게 정확히 어디를 살펴보아야 할지 알려주고 있다.
니콜 고믈리
“엄마가 된다는 건 제가 한동안 미뤄뒀던 것 중에 하나였어요. 제 미래에 커리어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공인이자 운동선수로서 누렸던 기회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까요? 세상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빡센” 일인지 도통 모르는 것 같아요.”

키미 워너가 가진 그런 의구심들을 탓할 수는 없다. 하와이 마우이섬 출신인 이 프리다이버는 지난 15년의 경력 동안 전 대륙 전 대양에서 스피어피싱(작살로 물고기 잡는것)을 했고 파타고니아를 포함한 약 12개 브랜드 후원을 받았으며 미국 스피어피싱 대회의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바다가 곧 사무실인 그녀는 자신의 작업 도구인 신체와 작살을 이용하여 경력을 쌓았고 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다 작년 39세의 나이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일과 가정 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력을 이어가고자 하는 열망은 여느 워킹맘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프리다이빙은 키미에게 타협할 수 없는 단 한 가지였다.

그녀는 “다이빙은 딱 제 거예요”라고 말한다. “제가 가장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고 프리다이빙을 해야만 숨통이 트여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제게 아기가 생겼고 임신한 여자가 프리다이빙 하는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어요.”

현재 오아후섬에 살고 있는 키미는 의사를 찾아 헤매고 기사도 읽어봤지만, 임산부가 프리다이빙을 해도 안전한지에 대해 직접 경험을 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들의 의견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들은 제가 다이빙을 하면 태아에게 전달된 산소가 부족할 거라고 했지만 저는 물속에 있을 때 제 몸과 아기가 가장 하나 됨을 느꼈어요. 제가 숨을 참고 있을 때 지금껏 그렇게 산소가 충만한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제 자신을 믿었고 매번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더 행복하고 건강해짐을 느꼈어요.”

그러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걱정이 많아진다는 거라고도 했다. 그때 키미는 해녀를 떠올렸다. 수 세기 동안, 대한민국 제주도의 이 여성들은 프리다이빙을 하며 전복, 성게, 문어 등 해산물을 채집하여 가족과 마을의 생계를 책임졌다. 키미는 15년 전 집에서 연 한 모금 행사에 손님으로 온 한국인 시인 이슬레 이 박(Ishle Yi Park)씨가 저녁 식사 중 시를 하나 낭송하겠다고 하면서 해녀에 대해서 처음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은 해녀의 가족에게서 생선 냄새가 진동을 해서 수치심을 느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였으나 키미에게는 시 속에 등장하는 제주의 해녀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자랑스러워졌고, 그녀의 집 또한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저랑 비슷한 여성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지 몰랐어요."라고 키미가 말했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바다의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 시를 들으면서 저는 순간 그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어요."

해녀 혹은 “바다의 여성”에 대한 기록은 1629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약 400년 전 여성들이 어떻게 이 어려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불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17 세기에 남편들이 전쟁에 파견되면서 부녀자들이 나서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키미가 듣기로는 일제 강점기에 남성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는 방법으로 여자들이 해녀가 되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이들은 여성들이 얼음장 같은 물에서 더 잘 견딜 수 있기에 어쩌면 필연적이었다고 말한다.
“바다의 여성들”은 키미를 자매애로 감싸주며 그들 세계에서 다이빙과
임신은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 (핀을 신는 것만이 유일하게 힘든 점) 은 아니라고 말해 준다.
니콜 고르믈리
한국 사회는 종종 해녀를 저소득층으로 조명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해녀를 자급자족하는 여성 공동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그들은 70대, 어떤 이들은 80대까지 다이빙을 계속하며 몇 년 전 연구에 따르면 최고령 해녀는 92세로 기록되었다.

키미는 북극에서부터 그리스, 뉴질랜드,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바다에서 다이빙을 해 왔기 때문에 그녀가 해녀와 함께 다이빙을 한다는 건 상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그녀가 임신하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않았고, 스스로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해녀가 본질적으로 그녀의 질문에 경험으로 대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연구 자료 중에는 어떤 해녀들은 여건에 따라 배 위에서나 물속에서 출산을 하기도 했다는 내용이 있었고 그녀들은 임신 중에도 계속 다이빙을 이어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 점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거나 운 좋게 그들을 인터뷰했던 사람도 다이빙을 함께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좀 더 긴밀한 설명을 듣고 싶었어요.”

지난 10월, 키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녀의 친구이자 함께 일한적 있는 영화 제작자 니콜 고믈리는 예전에 나누었던 제주도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저는 난생처음으로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에 우울해했었죠. 작년에 계획했던 니카라과, 노르웨이, 피지로의 여행을 모두 취소했어요. 그러다 ‘만약 나에게 기회가 생긴다면 가고 싶은 곳이 딱 한군데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당장 더 가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짐을 꾸렸다.

애초 그녀의 목표는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해녀와 함께 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키미는 이틀 동안 해녀들과 함께 물질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들의 여정, 작은 어촌계 해녀들과 함께 보낸 친밀한 순간들 그리고 그 여정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곧 개봉될 <제주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영상에 담겼다.

“그들은 항상 각종 인터뷰나 영상에 출연 제의를 받곤 했지만 관심이 없었어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거든요.”라고 키미는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제가 곧 엄마가 될 거라는 점에 저를 너그럽게 대해주었어요. 어머님들은 저를 ‘하와이 해녀’라고 불렀어요.”

첫날은 오전 8시에 해녀들의 불턱에서 시작되었는데, 불턱은 바닷가에 돌담으로 만든 집으로 해녀들이 장비를 걸어두고, 씻기도 하고 밥을 먹고 낮잠을 자는 곳이다. 몇몇 분들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해가 뜨기도 전부터 와 있었다.

“제가 사는 곳에선 사람들이 임신 중에 다이빙하는 게 좋지 않다고 해요.” 키미는 두 명의 통역가를 통해 해녀와 이야기했는데, 한 사람이 제주 방언을 한국어로 통역하면, 다른 한 사람이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해 주었다. “그들이 제 얘기를 이해하자마자, 모두 웃기 시작했어요. ‘괜찮아! 괜찮아! 임신 중에 다이빙하면 힘든 건 발에 오리발을 신을 때뿐이야.’”

작은 배 한 척이 불턱에서 해녀들을 싣고는 5 시간 동안 쉼 없이 다이빙을 했다. 키미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때론 자신의 영웅들을 직접 만나는 게 종종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해녀들이 기사 속에서 읽은 것처럼 다이빙을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나, 저는 도저히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키미가 말한다. “그들은 육지에서 절뚝거리며 걸을지 모르겠지만,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아마도 모두가 그녀들은 바다생물 또는 네이비 실 (미 해군 특수부대)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그들은 바닷속에서 물질하는 시간 내내 조류를 이겨내고 40피트 (약 12m) 아래로 수영해 들어가요.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물망에 뿔소라를 가득 담아 물 위로 다시 상승하기 전까지 해초 사이에서 움직이는 오리발뿐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계속 내려가고 올라오고를 계속 반복했죠. 제 다이빙 스타일은 천천히 움직이며 물고기가 내게 오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하지만 해녀들은 저에겐 불가능해 보일 만큼 빠른 움직임을 가르쳐 주었어요.”

해수면 위에서 키미는 한 무리의 돌고래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그것은 해녀들이 호흡을 회복하는 숨소리 같은 휘파람, 즉 ‘숨비소리’임을 알았다. 키미는 전에 소설 ‘The Island of Sea Women: 해녀들의 섬'에서 이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고 해녀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윗입술이 아랫입술보다 튀어나오도록 입모양을 만들고 숨을 깊게 들이 마신 후 높은 음조의 휘파람을 불며 숨을 내쉬는 거에요. 물 위에서 이렇게 하는 건, 마치 다음 다이빙을 위해 피로를 풀고 연료를 충전하는 등 순수한 안도감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여요. 여러 명이 함께 각각의 음색과 음조로 내는 휘파람 소리는 으스스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코러스처럼 들려요.”

그들은 배에 돌아오자마자 각자 약 66 파운드 (약 30kg) 정도 되는 뿔소라를 분류하여 판매할 것과 집으로 가져갈 것을 나눈다. (해녀들은 바다 생물들이 쉬고 번식할 수 있도록 채취 시기를 조정하는데, 매년 이맘때는 뿔소라가 채취 대상이었다.) 불턱으로 돌아온 그들은 따뜻한 식사를 나누고,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다. 수년간의 다이빙 세월은 그들의 청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키미 워너 (가운데) 그리고 그녀의 숙련된 멘토 : 양영숙(왼쪽) 그리고 문복순(오른쪽).
니콜 고믈리
“역사적으로 일부 사람들은 해녀를 저소득층으로 보긴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아요. 그들에게는 해녀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자신들이 강하고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과 가족을 돌볼 수 있다는 점이죠. 그들에게는 항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요. 제가 정말 맘에 드는 건 그 부분이에요. 그들은 ‘까짓거’라는 강한 멘탈을 가졌어요. 저는 지금껏 살면서 저런 주름을 갖기를 이렇게 기다려본 적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키미가 만난 해녀들은 마지막 세대의 일부로 간주된다. 1960 년대에는 26,000명이 넘는 해녀가 있었지만 2015년에는 4,000 명 정도였다. 해녀를 전승하기 위한 몇 가지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006년 제주도에 해녀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2007년에는 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2016년 해녀가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학자들은 산업적 어업이 전통적 어업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통은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해녀의 자손들은 대도시 직업을 찾고 있고 기후 변화는 수확에 빠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해녀들은 이 전통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우리처럼 고생할 필요 없어. 우리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걸 했던 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심하게 미화시키지 않으려고 해요. 그들은 쌀과 커피도 없고, 천 기저귀를 깨끗하게 빨 물조차 없던 힘든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다른 먹고 살 것을 찾기 위해)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갔죠. 고통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들이 자신의 가족을 돌보기 감수해야 했던 것들을 통해 강인함을 느낄 수 있죠. 바다가 그들에게 이런 힘을 주는 거예요.”

해녀의 이야기는 키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했다. 마우이 섬에서 풍족하지 않게 자라면서, 아버지는 작살로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녀가 24살 때 그 기술을 배운다고 했을 때 당황스러워하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가 스피어피싱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과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물려준 재능을 제가 활용할 수 있고 현대사회에 맞게 차세대 버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이해하시게 되었죠. 그리고 스피어피싱 덕분에 잡지에 많이 출연했어요.”라며 그녀가 웃는다.

키미는 이러한 전통적 어업 방식은 땅을 산에서 바다까지 수직으로 구역을 나누는 하와이의 고대 체계인 아후푸아(ahupua’a)와 조화를 이루며, 각 구역은 그 지역의 음식을 나누며 거대한 공동체를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녀에게 해녀 그리고 아빠와 함께한 낚시에 대한 추억은, 필요로 하는 것 만을 취하면서 생태계에 책임감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과거와 아주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런 가치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해요. 저는 그게 지역 사회가 서로를 돌보고 그들이 자원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도록 자연이 설계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